검색
  • Young Ho Hur

Herbert Von Karajan


오랜만에 카라얀 레코드를 좀 들어보고 싶어서 딱 10장을 골라보았다. 내가 옛날에 여기저기 기고했던 카라얀에 대한 원고 몇 개도 발췌해서 소개한다.

“KARAJAN IN REHEARSAL” (스타카토 1)

# 카라얀이 만들어내는 음악에 익숙한


청중은 그의 해석과 지휘 스타일을 얘기하면서 그의 연주에는 ‘스타카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하는데, 스타카토에 대한 카라얀의 독특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음반이 하나 있다. 1960년대 발표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수록된 9번 교향곡의 4악장을 녹음하는 세션과정을 발췌한 “Karajan In Rehearsal” (DGG 643201) 이라는 레코드이다. 발표당시 비매품으로 출시되었다고 하는데 이베이나 중고음반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 카라얀이 비올라와 첼로 악절이 어떻게 연주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설명(강요?)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문제의 소절은 마지막 악장 여덟 번째 마디 2박에 명기된 스타카토 기호에 대한 이해의 문제였다. 필하모닉 단원들은 이걸 짧게 연주하고, 그 뒤를 잇는 피아니시모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스코어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쉼표를 쉬게 되는 결과를 야기했고, 이 대목에서 카라얀은 연주를 멈추고 단원들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 카라얀: “틀렸어요, 틀렸어. 박자를 맞추라고! 피아니시모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 음을 유지하라고. 휴지(pause)가 너무 길어요. 그렇게 악보에 씌어져 있지 않아요. 이건 악보의 원본을 위조 (falsification of documents)하는 셈이라고!”

- 오케스트라 단원: “그렇지만 여기에 부점(dot)이 있는데요...” (중얼중얼)

- 카라얀: “그건 박자를 정확하게 치라는(beat) 의미이지, 음의 길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건 오류에요! 만약 음악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쳤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잘못된 선생이죠!!”

# 카라얀의 주장은 스타카토가 절대적인 기호가 아닌, 앞뒤의 음악적 문맥에 따라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상대적인 기호 -스포르잔도처럼- 라는 얘기인 것이다. 스타카토는 작곡가가 강요하는 부점이 아니고 음표의 길이와는 무관하다? 작곡가가 스타카토를 ‘강요’하고 싶다면 쉼표를 명시하면 되니까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원본의 위조’라고 했던 카라얀의 공격적인 한마디 때문에 한동안 비평가들이 카라얀의 신보를 리뷰하면서 ‘스타카토’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TCHAIKOVSKY SYMPHONY #4 (스타카토 2)

# 최고의 오디오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음반 매체를 통해 실제 연주의 모든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급작스러운 포르티시모, 낙차가 극단적인 다이내믹, 송곳과 같은 강렬한 스타카토는 실연에서 쾌감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음반 재생에서는 커다란 ‘위험 요인’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카라얀의 60년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녹음을 들어보면 스타카토를 매우 소극적으로 처리하면서 수려한 멜로디 라인을 강조해서 악상을 그려내고, 다이내믹에서도 날카로운 피크를 드러내지 않으며, 극소 음량의 피아니시모도 구사하지 않는다.


NIELSEN SYMPHONY #4 (스타카토 3)

# 80년대 디지털 녹음 기술이 등장하면서 관현악에 있어서 주성부와 부성부의 앙상블을 더욱 선명하게 녹음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음향 기술의 발전이 카라얀 음악 해석 성향에 변화를 야기했다고 볼 만한 대목이 바로 이 부분, 즉 기술의 발전인 것이다. 스타카토에 인색한 그의 지휘 스타일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80년대에 디지털로 녹음된 닐센의 4번 교향곡 연주를 들어보면 녹음 기술의 발전에 발을 맞추어 다양한 각도의 실험을 해보면서 관현악 감상의 새로운 재미를 청중에게 안겨주고 있다. 소니 회장과 함께 CD를 처음 들어본 후 카라얀의 남긴 유명한 말 한마디. “All else is gaslight!”



MAHLER SYMPHONY 5

# 왜 말러를 자주 연주하지 않느냐는 평론가의 질문에 카라얀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80세 생일기념 그라모폰 인터뷰 발췌) “ I spent three years in Vienna as a student. We heard this music — Mahler, Webern, Schoenberg — a great deal; it was our daily bread. Then the war came and after the war concert managers offered me the chance to do all the Mahler symphonies. I asked them, how much rehearsal do I get? ‘Two rehearsals for each concert.’ I said, ‘Gentlemen, please forget it.’ Mahler is very difficult for an orchestra. First, you must, as a painter would say, make your palette. The difficulty is great and the greatest danger is when the music becomes banal if conditions are not fulfilled.”


MOZART REQUIEM

# 비엔나 사람들이 오랫동안 즐기는 농담에는 “모차르트는 카라얀이 태어난 짤스부르크 출신”이라는 게 있다. 사실 두 인물은 짤스부르크와 다소 의미가 다른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모차르트는 1770년대의 짤스부르크를 너무 지역적으로 한정된 답답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떠날 궁리를 했던 반면, 카라얀은 그의 지휘자 인생의 중반부에 짤스부르크를 지휘자인 동시에 음악감독으로서 “다스릴” 방법을 찾은 뒤에 그 도시 근교의 조용한 시골에 정착했다. 카라얀의 모차르트 연주에서 보여주는 최고수준의 앙상블과 “성큼한 활력”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며 한 비평가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소위 순수 모차르트 해석이라는 미명 하에 아무런 개성을 찾을 수 없는 연주와는 비교될 수 없는 해석이다.”

DVORAK TCHAIKOVSKY SERENADE

# 그가 지휘를 하면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 행위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카라얀은 모든 작품을 암보로 지휘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적어도 악보를 훑어보기 위해서 눈을 떠야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 어둠 속에서 악보를 들춰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그 자신이 작품의 구조와 흐름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세부 디테일까지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WAGNER “TRISTAN UND ISOLDE”

# 카라얀의 기억력은 거의 초인적인 것이었다. 70년대에 존 빅커스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녹음할 당시 빅커스가 3막의 복잡한 앙상블 패시지 대목에서 박자를 맞춰 들어가는 대목에 대해 카라얀에게 물었을 때 그는 당시 10년 이상 그 작품을 연주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빅커스에게 그 비법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RICHARD STRAUSS ALPINE SYMPHONY

# “산을 사랑했던 슈트라우스 중독환자” 카라얀이 1980년 72세의 나이로 처음으로 “알프스 교향곡”을 그의 레퍼토리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매우 의외라고 하겠다. 이 작품의 연주를 위한 오케스트라는 일반적인 콘서트홀보다는 바그너 오페라 극장에 가까운 대규모 편성이 요구되었다. 심지어 슈트라우스는 악보에 목관악기주자들에게 “Samuel's Aerophon"이라는 호흡보조기구를 제공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는데, 이는 매우 길게 이어지는 코드를 연주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주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기구였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카라얀 휘하에서 연주를 하면서, 거의 ”장거리 잠수부“수준의 호흡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베를린 필하모닉의 주자들에게 이러한 보조기구는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OFFENBACH, STRAVINSKY, BARTOK

# 카라얀의 방대한 레퍼토리는 비발디, 헨델,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에서 시작되어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은 물론 현대음악에까지 이르기까지, 실로 끝이 없었다. 그는 독일 음악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 광범위한 오페라 작품, 동구권의 민족주의 음악을 탁월하게 연주했으며, 특히 러시아 음악에 대해서는 러시아인들이 인정할 정도의 대가였다. 오펜바흐와 같은 “가벼운” 레퍼토리 연주에서도 완성도 높은 레코드를 남겼지만, 스트라빈스키, 바르톡과 같은 “무거운” 현대음악에서도 탁월하게 해석이 돋보이는 음반을 남겼다.


조회수 2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